가상공간에서의 ‘장소 만들기’: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를 사례로
📝 발표문
- 서론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가상공간을 단순한 오락의 장을 넘어 사회문화적 상호작용과 의미 있는 경험이 이루어지는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게임과 같은 몰입형 가상환경은 사용자들이 특정 공간에 대해 정서적 유대와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데, 이는 마르크 오제(Augé, M. 1992)가 정의한 ‘비장소(non-place)’와는 대조적으로, 가상공간이 사용자 경험을 통해 의미가 부여되는 ‘장소(place)’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가상공간에서 장소 경험이 중요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리학 분야에서는 ‘장소성(placeness)’이 가상환경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한 탐구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특히 공간이 장소로 변모하는 과정인 ‘장소 만들기(place-making)’가 가상공간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본 발표에서는 가상공간에서의 장소 만들기 과정을 개발자의 경관 설계와 사용자의 경험이라는 두 축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경관의 정치성(politics of landscape)’ 이론과,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장소감(sense of place)’ 이론을 분석 틀로 삼아, 개발자의 의도가 반영된 가상 경관이 게이머에게 어떻게 경험되고 해석되어 의미 있는 장소로 변모하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설계된 경관의 정치성과 경험된 장소감이 어떻게 상호작용 해 장소성을 형성하는지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본 발표에서는 유비소프트(Ubisoft)社에서 고대 그리스를 방대하고 상세한 오픈 월드로 구현하여 비평적,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Assassin’s Creed Odyssey, 이하 AC 오디세이)’를 사례로 선정하였다. 본 발표는 질적 사례 연구 접근법에 따라 게임 자체와 개발 관련 2차 자료, 사용자 생성 데이터를 분석하여, 개발자의 설계 의도 및 경관에 내재된 정치성을 해석하고, 사용자들이 가상공간과 상호작용 하며 장소감을 형성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후 해당 분석 결과를 종합하여 설계된 경관의 정치성과 게이머가 경험하는 장소감 간의 수렴 및 발산 지점을 파악하고, 가상공간의 장소성 형성 메커니즘에 대한 통합적 해석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지리학의 핵심 이론을 가상공간이라는 새로운 연구 대상에 적용하여 이론적 논의를 확장하고, 게임 환경에서의 장소 만들기 과정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제공함으로써 관련 학문 분야에 기여하고자 한다.
- 선행 연구 분석 및 이론적 배경
본 발표는 개발자의 가상 경관 설계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 틀로 코스그로브(Cosgrove 1984)와 던컨(Duncan 1990) 등에 의해 발전된 ‘경관의 정치성’ 이론을 적용한다. 이들은 경관을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고 의미가 부여되는 ‘재현(representation)’으로 간주한다. 웨스턴(Western 1981)은 경관을 정의(定義)할 수 있는 ‘정의의 권력(power of defini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개발자는 서사 전달, 사용자 행동 유도, 미적 경험 제공 등의 목적을 위해 특정 세계관이나 관점을 반영하여 가상 경관을 설계한다. 가상 경관은 현실 경관과 달리 물리적, 경제적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므로 개발자의 의도나 이데올로기가 더욱 강화되어 재현될 수 있다. 따라서 ‘경관의 정치성’ 이론은 가상 경관의 시각적인 표면 너머에 숨겨진 의미 구조와 권력 작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개발자의 설계 의도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사용자가 가상공간을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 이-푸 투안(Tuan 1974; Tuan 1977)과 렐프(Relph 1976) 등 인본주의 지리학자들이 발전시킨 ‘장소감’ 이론을 적용한다. 이 이론들은 객관적이고 추상적인 ‘공간(space)’이 인간의 경험, 기억, 감정, 사회적 상호작용 등을 통해 개인 혹은 집단에게 의미 있는 ‘장소(place)’로 변환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콜브(Kolb 2006)는 가상공간 역시 ‘실제 장소(real place)’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어 이러한 논의를 가상공간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게임 환경에서 사용자는 가상 ‘공간’과 상호작용하고 몰입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정서적 애착과 소속감을 형성하여 그곳을 자신에게 중요한 ‘장소’로 인식하게 된다. 르페브르(Lefebvre 2000)는 경관의 정치성과 장소감을 하나로 엮어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인지하는 물리적, 사회적 공간 사용 방식인 ‘공간적 실천,’ 계획가, 권력자 등에 의해 구상되고 설계되는 추상적 공간인 ‘공간 재현,’ 사용자들에 의해 체험되고 상징적 의미가 부여되는 살아있는 공간인 ‘재현 공간’ 세 가지 요소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 한다고 보았다. 완벽하게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여기서 공간 재현은 권력을 가진 주체가 공간에 자신의 의도를 투영한다는 점에서 경관의 정치성과, 재현 공간은 공간에 대한 체험과 주관성을 강조하고, 개인이 상징과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장소감과 연관이 있다. 가상공간 및 게임 환경과 관련된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배티(Batty 1997)은 ‘가상 지리학(Virtual Geography)’의 가능성을 탐색했으며, 린과 공(Lin and Gong 2001)은 ‘가상 지리 환경(virtual geographic environments)’ 개념을 통해 지리학 연구의 폭을 넓히고자 했다. 최근에는 보스(Bos 2021)가 가상현실에 대해 지리학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애쉬와 갤러허(Ash and Gallacher 2011)는 게임과 게임 행위의 문화지리학적 연구 가능성을 탐색했다. 국내에서는 김영롱(2019)은 가상공간에 대한 지리학의 연구 동향을 정리하고 그 가능성에 대해 연구했다. 이영아·권두희·최혜림·정의준(2021)은 MDA 프레임워크를 통해 게임 내에서 장소성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MDA 프레임워크란 “개발자와 플레이어가 게임을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기획 프레임워크”이다(이영아 외 2021, 743). 정지윤·성정환(2021)은 시뮬라크르 이론을 통해 게임 공간에 장소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위 연구 중 본 발표와 같이 하나의 게임을 구체적인 사례로 삼아 수행된 연구는 없다. 반면 최경현(2024)은 AC 오디세이를 사례로 복원된 역사지리경관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적용해 한국의 역사지리경관을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으나, 이러한 경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수행하지는 못했다. 인접 학문 분야에서는 가상공간에서의 경험, 내러티브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지리학 분야에서도 일부 연구자들이 가상공간의 지리적 함의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나, 대부분 이론적인 연구에 머물렀다. 본 발표는 이러한 선행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경관의 정치성’과 ‘장소감’이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지리학 이론을 AC 오디세이라는 구체적인 사례에 통합적으로 적용하여, 가상공간에서의 장소성 형성 매커니즘을 규명하고자 한다.
- 설계된 경관의 정치성
가상 경관에 내재하는 정치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발팀이 어떠한 의도와 철학을 가지고 경관을 구축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AC 오디세이 개발팀은 플레이어에게 개인화(personalized)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았으며, 이는 ‘플레이어 주도성(player agency)’을 중심으로 게임을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했다. 동시에 개발팀은 ‘진정성(authenticity)’ 있고 현실적인 세계를 만드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 역사가들과 협력하며, 실제 그리스를 방문하고, 역사적 인물, 신화, 일상생활을 연구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진정성 측면은 AC 오디세이의 교육용 콘텐츠인 디스커버리 투어(Discovery Tour)를 통해 더욱 강조되었다(CraigB 2018; Ubisoft Entertainment 2019; 최경현 2024, 6, 14-16). 그러나 이 두 목표는 항상 일치된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 개발팀은 게임플레이를 위해 예술적 허용과 각색을 가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게임의 콘텐츠를 위해 그리스 신화 속 생물들을 의도적으로 포함했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 그리스 지형은 게임 내에서 압축되었고(최경현 2024, 21-24), 실제 역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스파르타의 여성 전사가 주인공 중 하나로 선택되었다. 이렇듯 개발팀은 가치 판단을 통해 어떤 것이 재현되는지 결정하며 ‘정의할 권력’을 행사하였다. 이 두 목표가 충돌하지 않더라도 ‘플레이어 주도성’을 중요시하는 것은 과거 사회 구조와 개인의 주체성에 관한 역사적 복잡성과 제약을 단순화하거나 자유주의적인 관점을 우선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진정성’을 추구함에 있어서도 다양한 역사학적 관점과 해석 중 하나가 개발팀의 주관적 판단과 의도, 때로는 시장의 요구가 반영되어 선택된다. 이러한 가치와 그에 따른 경관 설계는 정치적인 함의를 지닌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구축된 결과물인 가상 경관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다. 이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재현이다. AC 오디세이에서 아테네는 가장 큰 도시로 묘사되며, 파르테논과 같은 인상적인 건축물로 가득 찬 분주하고 다채로우며 상세하게 표현되며, 민주주의 철학, 문화의 중심지로 그려져 소크라테스, 페리클레스 등의 인물과 조우하게 되는 장이다. 반면 스파르타는 위압적인 조각상과 군국주의적 경관을 통해 묘사되며, 정치적으로는 이중 왕정과 에포로이의 권력을 재현한다. 이런 재현 과정에서 아테네는 과두제적 공화정과 유사한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며(Pueblo 2023), 현실에서는 여러 마을이 모여 이루어졌으며, 값비싼 신전이나 건축물도 없었던 스파르타가 게임에서는 웅장한 건축물이 밀집한 하나의 도시로 재현되었다(천병희 2011, 35). 이러한 재현 방식은 엄격한 역사적 정확성보다는 대중적인 인식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크며,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비를 강화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AC 오디세이에는 델포이, 올림피아, 에피다우로스, 크노소스 등의 유명 유적지가 복원되어 있다. 유적지와 기념물을 복원하는 데도 선택이 필요하기에, 이에 대한 재현 역시 개발진의 의도가 반영된다. 이러한 디지털 재구성은 대중의 기억과 과거에 대한 이해를 형성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며, 게임은 일종의 ‘대중문화적 고대(pop-cultural antiquity)’를 생산하고 소비하게 한다(Clare 2020, 143). 더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역사적 경관을 디지털로 복원하는 행위 자체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무엇을 포함하고 배제할지, 무엇을 강조할지, 유적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선택은 현대적 가치, 가정, 그리고 과거를 ‘정의’하는 개발자 자신의 권력을 반영한다.
- 경험된 장소로서의 가상공간
디지털 게임 환경에서 플레이어의 장소감 형성에 기여하는 주요 경험 요소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현존감(presence)’으로, 플레이어가 가상환경 속에 ‘실제로 존재(being there)’한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감각을 의미한다(Interaction Design Foundation 2023). norskost는 “고대 그리스 주변을 몇 시간이고 항해하며 바람을 맞고 아름다운 섬으로 떠돌아다닐 수 있었다”고 리뷰를 작성하며, AC 오디세이에서 높은 수준의 현존감을 경험했음을 시사했다(Metacritic). 둘째는 ‘상호작용(interaction)’과 ‘탐험(exploration)’으로, 이 요소들은 가상 세계에 장소감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Uzunogullari, Johnson and Pappas 2025). renboy2(2018)는 AC 오디세이의 탐험 모드가 플레이어에게 단서를 기반으로 목표를 스스로 찾아내도록 유도하여 몰입감을 깨는 요소를 줄여준다는 평을 남김으로써, 능동적인 탐험이 장소감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침을 보여줬다. 셋째는 ‘정서적 연결(emotional connection)’과 ‘장소 애착(place attachment)’이다. AC 오디세이의 유저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게임 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뽑기도 했는데, 이것은 장소 애착이 형성되며 장소감을 구축한 것을 보여준다(YouTubeCrowProd 2024). 위 요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플레이어에게 장소감을 형성하도록 하는데, 먼저 플레이어가 가상 경관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살펴보면, 플레이어들은 게임 세계의 경관과 그 규모에 대해 호평하는 경우가 많다(Metacritic). 이러한 시각적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기억에 남는 요소가 되어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게임 진행을 멈추거나, 경치에 매료되어 “퀘스트를 잊고 산만해진다”고까지도 평하였다(TolkienTraveller 2025). 이러한 경관에 게임 시스템이 추가되면 플레이어들은 장소에 대한 애착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되는데, 앞서 언급한 항해 시스템을 활용해 게임을 즐기며 주변 경관과 장소에 대한 애착을 느끼는 것이 좋은 예다. 이외에 감각적인 디테일 역시 현존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 꼽혔다. 그러나 몇몇 사용자들에게는 AC 오디세이의 거대한 규모는 때로는 반복적인 경관을 마주하게 해 피로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Metacritic). 플레이어들이 장소감을 느끼는 구체적인 장소를 살펴보면, 게임의 시작 지점인 케팔로니아 섬에서 향수나 귀향을 느끼며, 키테라와 세리포스 섬에서는 평화로움, 레스보스에서는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를 느낀다. 포키스에서는 “가을 느낌을” 받는다는 평이 있었으며, 라코니아에서는 스파르타 특유의 분위기와 경관을 이유로 선호되었고,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구는 “붐비면서도 평화로운” 곳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애착의 이유를 살펴보면 미적 매력, 독특한 분위기, 게임 속 서사에서의 중요성, 발견과 모험의 감각 등이 있다(YouTubeCrowProd 2024). 앞서 분석한 인식과 애착의 요소들을 종합하여 플레이어의 ‘여정’ 속에서 장소감이 점진적으로 형성되고 진화하는 전체 과정은 다섯 단계를 거친다. 첫째, 경관의 미적 매력은 플레이어에게 초기 몰입을 유도하며, 세계와 관계를 맺고 싶게 만든다. 둘째, 탐험과 상호작용을 통한 심화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는 본인의 해석 능력을 사용하며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셋째, 게임 내 서사는 플레이어가 특정 장소에 서사적 의미 또는 경험을 부여하게 한다. 퀘스트를 완료하고,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선택을 하는 것은 특정 장소를 단순한 배경에서 기억에 남는 사건과 개인적인 이야기 진행의 장소로 변화시킨다. 넷째, 감각적 몰입은 플레이어의 현존감을 강화한다. 다섯째, 정서적 정박은 특정 장소가 앞서 언급된 요인들의 합류점, 즉 아름다운 경치와 인상적인 퀘스트의 결합 등으로 인해 ‘정서적 교감 지점’이 될 때 발생한다. 이 모든 과정은 투안이 강조한 것과 같이 각 사용자의 주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한 플레이어는 아테네의 장엄함에 경탄할 수 있지만, 다른 플레이어는 특별히 기억이 남는 자신만의 모험을 경험한 작은 장소에서 가장 강한 장소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렐프의 ‘장소의 내부성(insideness of places)’ 개념과도 일치한다(Relph 1976, 142).
- 경관의 정치성과 장소감의 상호작용
개발팀은 AC 오디세이를 통해 ‘진정성’ 있는 고대 그리스 세계를 구현하는 동시에, ‘플레이어 선택’을 핵심 가치로 삼아 개인화된 RPG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러한 설계 의도는 플레이어 경험과 여러 지점에서 교차하며 장소성 형성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다. 첫째, 개발팀이 의도한 시각적 웅장함과 방대한 세계 규모는 플레이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초기 몰입을 유발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거대한 규모는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역설을 낳기도 했다. 이는 시각적 스펙터클만으로는 지속적인 장소감을 유지하기 어려우며, 규모가 의미 있는 상호작용 및 경험적 다양성과 균형을 이루지 못할 경우 오히려 장소감을 저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개발자들이 핵심 가치로 내세운 ‘플레이어 선택’은 플레이어 경험 측면에서도 장소감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탐험이나 대화 선택지를 통해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경험은 플레이어가 가상공간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경험과 의미를 새겨넣으며, 공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장소 애착을 형성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선택’에 대한 강조는 그 자체로 현대적 가치를 과거에 투영하는 이데올로기적 덧씌우기일 수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 시스템이 제공하는 ‘선택의 자유’를 통해 주체성을 경험하며 장소감을 형성하지만, 이 경험 자체가 특정 이데올로기의 반영일 수 있다는 점은 경관의 정치성과 경험된 장소성의 복합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AC 오디세이 내 경관의 정치성은 플레이어의 장소 애착에도 영향을 미쳤다. 첫째, 게임 내에서 뚜렷하게 대조적으로 재현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경관은 플레이어들에게 각기 다른 ‘분위기’를 전달하며 정서적 반응을 유발했다. 플레이어들이 특정 지역의 ‘분위기’를 애착의 이유로 꼽는 경우는 개발자가 의도한 정치적 표상이 플레이어의 경험과 조응하며 장소감 형성에 기여함을 보여준다. 둘째, 기념비적 건축물은 개발자가 권력, 역사, 문화적 성취를 상징하기 위해 배치한 요소인데, 이에 대한 플레이어 경험을 분석한 결과, 이러한 랜드마크들은 실제로 플레이어들에게 강한 시각적 인상을 남기고 기억에 남는 장소적 기준점이 되었다. 비록 역사적 정확성이 플레이어의 주된 관심사는 아닐지라도, 경관의 정치성이 시각적 스펙터클과 결합하여 장소 경험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한 것이다. 반대로 플레이어들이 느끼는 장소감이 개발팀의 의도와는 다른 사례도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강한 장소감을 느끼는 장소가 정치적 중심지나 기념비적인 장소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플레이어들은 때때로 폴리스 외곽의 자연 경관, 특정 섬, 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지역에서 더 강한 애착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주로 미적 아름다움, 독특한 분위기, 개인적인 경험 등을 애착의 이유로 들었는데, 이것은 개발자가 설계한 거시적인 정치적 경관 구조 외에도 플레이어 개개인의 미시적인 경험과 상호작용, 주관적 해석이 장소감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을 시사한다. 즉, 설계된 경관의 정치성은 장소감 형성의 ‘재료’가 될 수 있지만, 최종적인 장소성은 플레이어의 경험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 결론
본 발표는 AC 오디세이 사례를 통해 가상공간에서의 ‘장소 만들기’ 과정을 개발자의 경관 설계와 사용자의 경험이라는 두 축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였다. 구체적으로 ‘경관의 정치성’ 이론과 ‘장소감’ 이론을 적용하여, 개발자의 의도가 반영된 가상 경관이 게이머에게 어떻게 경험되고 해석되어 의미 있는 장소로 변모하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설계된 경관의 정치성과 경험된 장소감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 규명하고자 했다. 분석 결과, 첫째, AC 오디세이의 가상 경관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개발팀의 의도와 가치 판단, 때로는 시장의 요구가 반영되어 구축된 ‘정치적 공간’임을 확인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재현, 유적 및 기념물의 선택적 복원 등은 개발자의 ‘정의할 권력’이 작용한 결과이며, 이는 특정 이데올로기나 관점을 내포할 수 있다. 둘째,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가상 경관과 상호작용 하며 현존감, 탐험, 정서적 연결 등을 통해 주관적인 ‘장소감’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각적 아름다움, 게임 시스템과의 결합, 감각적 디테일 등은 긍정적인 장소감 형성에 기여했지만, 거대한 규모로 인한 반복성은 피로감을 유발하기도 했다. 플레이어들은 미적 매력, 독특한 분위기, 서사적 경험, 개인적 발견 등을 통해 특정 장소에 강한 애착을 형성했다. 종합적으로, 가상공간에서의 장소 만들기는 개발자가 설계한 경관의 정치성과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장소감 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확인했다. 개발 의도는 플레이어 경험과 조응하며 장소감을 형성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한 플레이어들은 개발자가 설계한 정치적 경관 구조 외에도 개인적인 경험과 해석을 통해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며, 설계된 의미와 경험된 의미 사이의 경합과 재해석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본 발표는 지리학의 핵심 이론인 ‘경관의 정치성’과 ‘장소성’을 가상공간이라는 새로운 연구 대상에 통합적으로 적용하여, 가상공간에서의 장소 만들기 메커니즘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는 가상공간에서의 인간 경험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지리학 이론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게임 디자인 등 관련 분야에 실질적인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향후 연구에서는 보다 다양한 가상공간 사례 분석, 또는 사용자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가상공간 장소 만들기에 대한 더욱 풍부한 논의를 진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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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nboy2, 2018, “Assassins Creed Odyssey IS Amazing (no spoilers),” Reddit(https://www.reddit.com/r/assassinscreed/comments/9kokfr/assassins_creed_odyssey_is_amazing_no_spoilers/?rdt=45307, 2025.05.12.).
- Ubisoft Entertainment, 2018, Assassin’s Creed Odyssey
- Ubisoft Entertainment, 2019, January 25, Inside the Studio with World Director Benjamin Hall(https://www.ubisoft.com/en-ca/game/assassins-creed/news/2zOk4Z7OoI5COWAh6NRsfS/inside-the-studio-with-world-director-benjamin-hall, 2025.05.08.).
- YouTubeCrowProd, 2024, “What’s your favorite location?,” Reddit(https://www.reddit.com/r/AssassinsCreedOdyssey/comments/1998k9y/whats_your_favorite_location/, 20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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